포스테키안
2024 182호 / Science black box
숨겨진 과학자 : 최초의 과학자들
달에 착륙한 최초의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 지구 궤도를 비행한 최초의 동물 ‘라이카’, 지구를 일주한 최초의 탐험가 ‘마젤란’, 세균을 죽이는 최초의 항생제 ‘페니실린’. 이처럼 최초라는 수식어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더 오래 남고, 그 업적의 위상을 높입니다. 그런데, 최초로 전화기를 발명한 사람이 ‘그레이엄 벨’이 아닌 ‘안토니오 메우치’인 것처럼 만약 우리가 알고 있는 최초의 과학자들이 사실 최초가 아니라면 어떨까요? 이번 사이언스 블랙박스 코너에서 진짜 ‘최초’의 과학자들에 대해 알아봅시다.
최초의 전구 발명가
이제는 지구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전구!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인 전구를 최초로 개발한 사람은 에디슨이라고 알려져 있는데요! 과연 사실일까요?
전구의 첫 시작은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한 1879년보다 77년이나 빠른 18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해 영국의 화학자 ‘험프리 데이비(Humphry Davy)’는 왕립연구소에서 최초의 백열등인 아크등을 만드는 데에 성공하는데요. 아크등의 밝기는 촛불 밝기의 4,000배로 매우 밝지만, 그 수명이 짧아 상용화에는 실패했습니다. 대신 이는 전구의 시대를 여는 첫 단추가 되었습니다. 아크등은 아크방전을 이용하여 빛을 내는데요. 아크방전은 기체의 방전이 최대에 달해 전극 재료의 일부가 기체가 된 상태를 말합니다. 전류가 연결된 두 탄소봉을 가까이하면 전극 사이에서 아크방전이 일어나 공기에서 이온과 전자가 분리되고, 생성된 플라스마1에서는 큰 전류가 흐릅니다. 이렇게 전극 사이에 낮은 전압으로 큰 전류를 내보내면 전극이 가열되어 전자가 방출되고 밝은 빛을 내는 것이죠!
하지만, 데이비의 아크등은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전구와는 거리가 멉니다. 현재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전구의 원형은 1835년 ‘제임스 보먼 린지(James Bowman Lindsay)’가 발명했습니다. 그러나 수명이 짧고 발열이 심해 상용화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이후, 1860년에 ‘조지프 윌슨 스완(Joseph Wilson Swan)’이 데이비의 아크등을 개량하고, 1875년에 특허를 등록하였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에디슨은 전구를 최초로 발명한 사람이 아니라, 전구를 개량하여 사업에 성공한 사업가랍니다.
최초의 증기기관을 발명한 과학자
제1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이었던 ‘증기기관’. 여러분들은 증기기관 하면 누가 떠오르시나요? 증기기관의 발명가 ‘제임스 와트’, 증기선의 발명가 ‘로버트 폴턴’, 증기기관차의 발명가 ‘조지 스티븐슨’ 등을 대표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데요. 이들 모두 증기기관의 상용화에 크게 기여했지만, 증기기관의 창시자는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먼저, 증기기관을 최초로 고안해 낸 사람은 기원전 1세기 알렉산드리아의 발명가 ‘헤론(Heron)’입니다. 헤론은 아에올리스의 공(Aeolipile)이라고 하는 증기기관을 고안해 냈습니다. 이는 물을 끓여서 증기가 공을 돌리게 하는 장치로, 증기의 열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전환한 최초의 장치였습니다. 헤론은 이 원리를 적용하여 자동문을 만들었습니다. 성전 앞에 불을 붙이면 지하 공기탱크의 공기가 팽창하여 도르래를 움직이도록 하는 원리를 적용한 것입니다. 헤론이 고안한 증기기관은 증기로부터 발생한 압력을 실제 동력으로 사용하지 않았고 일정 부분 사람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헤론은 증기기관의 가능성을 열었고 후대 증기기관의 발명에 기반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증기기관은 누가 만들었을까요? 바로 ‘토마스 뉴커먼(Thomas Newcomen)’입니다. 18세기 초 영국에서는 증기로부터 발생한 압력을 실제 동력으로 사용하려는 시도가 시작되었고, 1712년에 토마스 뉴커먼이 최초의 실용적인 증기기관을 발명했습니다. 뉴커먼의 증기기관은 광산에서 물을 끌어 올리는 데 사용되었는데요. 물을 끓여 증기를 만들고, 증기가 실린더 안의 피스톤을 밀어 올렸습니다. 이후 찬물로 증기를 응축시키고, 피스톤이 내려오는 과정을 반복하며 동력을 제공했습니다. 증기기관의 발명가라고 알려진 제임스 와트는 뉴커먼의 증기기관을 개량하고 효율성 향상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질량 보존의 법칙 최초 발견자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질량 보존의 법칙’. 이 법칙은 앙투안 라부아지에가 발견하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질량 보존의 법칙은 러시아의 과학자 ‘미하일 로모노소프(Mikhail Lomonosov)’가 최초로 발견하였답니다! 질량 보존의 법칙이란, 화학반응에서 반응물의 질량 총합이 생성물의 질량 총합과 같다는 것입니다. 라부아지에는 1774년에 이 법칙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증명하여 현대 화학의 아버지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약 20년 전인 1756년, 미하일 로모노소프는 이미 질량 보존의 법칙을 알고 있었습니다. 로모노소프는 금속을 가열하는 실험에서 금속이 산화하며 질량이 증가하는 것을 관찰했고, 물질이 반응할 때 질량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로모노소프는 라부아지에보다 먼저 질량 보존의 법칙을 발견했음에도 왜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을까요? 첫 번째 이유는 국적에 있습니다. 당시 러시아 과학계는 영국, 프랑스 등 서유럽에 비해 덜 발전되어 주목을 받기 힘들었습니다. 또한 로모노소프의 논문은 러시아어로 쓰였기에 다른 국가의 과학자들이 읽기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실험 방법에 있습니다. 로모노소프와 라부아지에 모두 반응물과 생성물의 질량을 측정하는 방식을 사용했지만, 라부아지에의 실험이 더 체계적이었기 때문이죠.
비록 로모노소프는 질량 보존의 법칙의 주인공이 되진 못했지만, 그의 업적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그의 연구는 러시아 과학의 기초를 다지는 데 기여했으며 러시아 최초의 화학 실험실 설립이나 러시아어로 쓰인 화학 교과서의 편찬 등 후대 과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또한 그의 연구에서는 개인의 명성을 높이기보다는 진정으로 과학의 발전을 기대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고, 그는 여전히 많은 연구자들의 귀감이 되고 있답니다!
과학 발전의 진정한 주역들
에디슨, 제임스 와트, 라부아지에와 같은 유명한 과학자들뿐만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은 ‘최초’의 과학자들 역시 과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세상에 보이는 것은 최종적인 결과물이지만, 이는 최초의 발견에 실용적 응용, 그리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들이 어우러져 탄생한 것입니다. 수많은 과학자, 연구자들의 노력 덕분에 우리는 과학 기술을 누리며 편리한 삶을 살고 있답니다. 여러분도 자신의 연구로 세상에 크게 기여하는 이공학도가 되기를 기대하겠습니다!
글. 무은재학부 24학번 30기 알리미 신동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