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테키안
2024 182호 / 포라이프
손끝으로 세상을 바꾸는 방법
안녕하세요, 포스텍 컴퓨터공학과의 심민섭입니다. 고등학생 시절 포스텍 입학을 꿈꾸며 즐겨 보던 포스테키안에, 이제는 제가 직접 글을 남길 수 있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지금부터 제가 이공계열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부터 컴퓨터공학도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이야기해 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학창 시절 그랬던 것처럼 진로에 대한 고민의 시기를 겪고 계실 독자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공계가 세상을 바꾸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연구를 통해 새로운 개념을 밝히고 세상에 변화를 일으키는 자연과학적 접근이며, 다른 하나는 이러한 자연과학의 개념을 응용해 문제의 기술적 해결책을 만들어내는 공학적 접근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과학적 개념을 배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를 활용해 실생활의 문제를 해결하는 제품을 개발하는 데 큰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연구원보다는 공학자가 되어 전자기기와 같은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제품을 만들고 싶었죠. 포스텍은 이런 제 목표를 이루기에 최적의 장소였습니다. 새내기 시절에는 학과에 얽매이지 않고 이공계열 기초 과목들을 수강하면서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탄탄한 기반을 다질 수 있었고, 전공 선택의 자유 덕분에 여러 분야를 경험하며 천천히 전공을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전공을 선택한 이후에도 STC 제도 등을 통해 다른 학과의 수업을 자유롭게 들으며 꿈을 점차 구체화해 나갔습니다.
2학년 때에는 본격적으로 지금까지 배운 이론적 지식을 일상 속 문제 해결에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교내 UGRP(Undergraduate Group Research Program)에 참가해 실생활에 필요한 제품을 직접 설계하고 제작해 보기도 했는데요. 저희 팀은 혼술 문화에 익숙한 청년들의 안전한 음주 생활을 돕기 위해 음주자의 알코올 농도를 실시간으로 측정해 적정량의 맥주를 따라주는 ‘음주 측정 맥주 디스펜서’를 개발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최적화된 하드웨어 설계, 제어 시스템과 화면 입출력을 담당하는 소프트웨어 구상, 사용자 데이터를 관리하는 웹 개발 등 제품 개발의 전 과정을 경험했습니다. 실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일은 제가 공학을 배우는 이유이자 인생의 목표였습니다. 그러나 실제 개발 과정을 경험한 이후로 스스로의 한계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제품 개발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더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깊은 이해도를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하드웨어를 제작할 수 있어도 그에 맞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지 못하면 혼자서 제품을 완성할 수 없었죠. 또한,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는 점도 적극적인 도전을 망설이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원하는 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힘으로 제품을 완성하려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방법을 더 깊이 고민해야 했습니다.
당시 만들었던 맥주 디스펜서
그러던 중 ‘기업가 정신’이라는 과목을 수강하면서 MVP(Minimum Viable Product)라는 개념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초기 자본과 인적 자원이 부족한 스타트업들은 핵심 기능만을 갖춘 간단한 제품을 만들어, 적은 리스크로 그 제품의 유효성을 확인합니다. 그런 다음, 사용자들에게 높은 효용을 제공하는 제품을 선별해 집중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죠. 저는 스타트업의 이러한 실험적 접근 방식에 큰 매력을 느꼈습니다. 특히, 적은 인력과 자본으로도 빠르게 제품을 개발해 사용자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창업에 매료되었습니다. 코딩을 통해 혼자서도 효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고, 시공간의 제약 없이 사람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습니다. 코딩은 말 그대로 제가 손끝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게 하는, 제 목표를 이루기 위한 최적의 수단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컴퓨터공학과를 선택했고, 소프트웨어 개발에 뛰어들었습니다.
3학년이 되던 해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회사 차원에서의 제품 개발, 즉 창업을 시도했습니다. 창업에 뜻이 있는 친구들과 함께 혼자가 아닌 팀으로 제품을 만들었고, 덕분에 이전보다 더 높은 수준의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더 큰 어려움도 생겼습니다. 개인 개발이 자신의 불편함에서 출발하는 것과 달리, 회사의 제품 개발은 타인의 불편함에 공감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사용자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대부분의 사용자는 자신이 무엇이 불편한지 잘 인식하지 못하거나 명확히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저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기능들이 시장에서 외면받기도 했고, 팀의 역량을 넘어서는 요구들도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창업 아이템을 확정하는 데에만 6개월 이상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블루칼라(blue-collar, 육체노동 종사자)분들을 위한 버티컬 채용 플랫폼, ‘고초대졸닷컴’입니다. 서비스가 확정된 후 며칠 만에 간단한 MVP 사이트를 만들어 출시했고, 최소한의 기능만 선보였음에도 수만 명의 사용자가 몰렸습니다. 그 결과, 저희는 법인을 설립하고 투자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성공적인 창업을 위해서는 개발 외에도 많은 요소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MVP를 통해 제품의 필요성은 검증했지만, 경쟁력 있는 서비스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적절한 수익 구조와 마케팅 전략이 필수적이었죠. 단순히 기능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서, 사용자 경험을 끊임없이 측정하고 빠르게 개선하는 것도 중요했습니다. 경영진의 입장에서는 회사 운영과 직원 관리도 큰 과제였고, 때로는 기능의 필요성을 검증하기 위해 수십 명의 인사담당자들에게 콜드메일을 보내는 무모한 도전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즉각적인 성과는 없었지만, 실패를 거듭하고 다시 도전하는 과정을 통해 폭발적인 성장을 이뤄낼 수 있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더 넓은 시각으로 제품을 바라볼 수 있는 창업가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저는 단순히 나만의 문제를 해결하는 개발자가 아닌, 타인의 불편함을 이해하고 이를 서비스로 해결하는 개발자로 거듭났음을 느낍니다.
웹 상으로 ‘대학전쟁’ 프로그램 게임 구현
최근 이를 가장 절실히 체감한 계기가 바로 ‘대학전쟁’이었습니다. 작년에 저는 ‘대학전쟁’이라는 OTT 프로그램에 출연했는데, 많은 시청자분들이 해당 방송에 나온 문제들을 직접 풀어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들은 수백 개의 문제를 일일이 손으로 풀고 채점해야 했으며, 여러 번 문제를 푸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를 해결하고자, 저는 방송에 나왔던 여섯 종류의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는 웹사이트를 개발했습니다. 자동 채점 기능, 실시간 문제 생성 기능, PDF 출력 기능 등을 포함해, 국내외 시청자들이 보다 편리하게 문제를 풀 수 있도록 만든 사이트였습니다. 또한, 창업 경험을 살려 사용자들의 사용 패턴을 분석하고 간단한 마케팅도 진행하면서, 개발자로서 더욱 성장했음을 느꼈습니다. 저는 공학이란 일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제품으로 구현될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고 믿습니다. 앞으로도 제 손끝을 통해 공학으로 세상에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글. 컴퓨터공학과 19학번 심민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