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테키안

2021 여름호 / HELLO NOBEL

2021-07-20 79

유전자 편집기 크리스퍼CRISPR의
유래와 현황, 그리고 미래

[2020 노벨 화학상]
수상자 :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Emmanuelle Charpentier)
제니퍼 다우드나 (Jennifer Doudna)
수상 이유 : 유전자 편집기 CRIPSR발견 및 개발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정보와 나노 기계의 이중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컴퓨터의 정보는 자기테이프나 하드 디스크에 0과 1을 이용한 2진법으로 들어 있는데 비해, 생물의 정보는 4진법의 디지털 정보로서 DNA라는 분자 속에 배열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키워드는 ‘디지털’입니다. 컴퓨터에서 하나의 정보 단위는 bit(0, 1)인데, 생물에서는 염기쌍(A, T, C, G)이라고 부릅니다. 이 비트를 모아서 하나의 의미 단위인 byte를 만듭니다. 제가 포항공대 학부생이던 시절에 처음 만난 컴퓨터는 8bit 컴퓨터였는데요, 이는 28 = 256개의 정보를 표현하는 분량입니다. 이 정도면 자판기 위의 알파벳과 숫자, 특수기호들을 다루기에는 문제가 없을 텐데, 점점 다양한 나라의 언어와 새로운 표기들을 표현할 필요가 생기면서, 16bit, 32bit로 확장되더니 지금은 64bit 컴퓨터가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DNA에 담긴 정보는 생물나노기계인 단백질의 서열 정보인데, 20개의 아미노산을 구분하고 지정하기 위해서 3bit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생물은 4진법 3bit인 디지털 정보를 사용하고, 이 정보를 이용하여 우리 몸을 이루고 생화학적 반응을 촉매하는 모든 단백질을 만들어 쓰는 시스템입니다. 우리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는 것은 기본적으로 자기 테이프 같은 DNA에 담긴 디지털 정보 한 세트뿐입니다. 인간의 DNA는 3GB 정도의 정보를 담고 있으므로, 몇 기가짜리 썸드라이브에 우리 유전 정보 전부가 쏙 들어갈 수 있습니다. 엄청나게 복잡하리라 생각되는 사람의 유전 정보가 요즘의 정보화 시대의 기준으로 보면, 최소한의 정보량으로 다룰 만한 수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인간 유전체(유전 정보 전체)의 서열을 읽어내는 것이 인간게놈프로젝트를 통해 가능해졌고, 과학자들은 그다음 단계로 이 유전 정보를 편집하고자 시도해 왔습니다. 컴퓨터 정보는 원하는 위치를 찾아서 전기 혹은 자기적인 방법으로 쉽게 지우거나 고치는 것이 가능한데요, 유전자의 정보를 바꾸기 위해서는 DNA에 들어 있는 염기쌍들을 화학적으로 잘라내거나 교체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수십억 개의 염기쌍 속에서 원하는 자리만 바꾸기 위해서는 특정한 서열을 인지하는 인식 방법과 그 주위를 자르고 붙이는 화학적 가위와 풀이 필요합니다. 유전자를 변형하는 데 필요한 이러한 복합 도구를 유전자 가위라고 부릅니다. 1세대 유전자 가위는 DNA 서열 몇 개씩을 인지하는 Zn Finger 단백질을 이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보다 인식 능력의 정확도가 높은 2세대 Talen에 의해 대체되는가 하더니, 혜성처럼 나타난 3세대 크리스퍼(CRISPR)에 의해 혁명 같은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크리스퍼는 발견된 지 10년이 채 되지 않은 2020년에 독일 막스 플랑크 연구소의 에마뉘엘 샤르팡티에와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분교의 제니퍼 다우드나 두 사람에게 노벨 화학상 수여의 영광을 안겼습니다. 노벨상은 인류의 복지에 지대하게 기여한 발견이나 개발에 주어지기에, 보통 기초과학적 발견이 공헌으로 이어지도록 충분히 숙성되는 데는 오랜 기간이 걸리고, 또한 생존한 사람에게만 주어진다는 규정 때문에 노벨상을 받으려면 우선 오래 살아야 한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림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CRISPR)

발견에서 노벨상 수상까지 걸린 시간이 10년도 걸리지 않았다는 것은 크리스퍼의 잠재력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2011년 에마뉘엘 샤르팡티에는 박테리아가 바이러스의 감염에 대한 방어 기작으로 크리스퍼를 이용하여 바이러스의 DNA를 잘라버린다는 것을 처음 발견하였습니다. 같은 해, 이 발견을 제니퍼 다우드나와의 공동 연구로 발전시켜 어떤 서열의 DNA라도 선택적으로 자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유전자 가위로서 크리스퍼가 가진 잠재력을 증명해 보였고, 이 공로로 노벨 화학상을 공동 수상한 것입니다. 코로나의 예처럼 바이러스는 인류에게도 오랫동안 생존을 놓고 경쟁하는 존재인데, 우리뿐만 아니라 박테리아에게도 바이러스는 힘에 겨운 경쟁 상대였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바이러스의 침입을 받은 박테리아들은 연전연패를 당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정말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박테리아는 침입한 바이러스의 DNA 서열 일부를 잘라서 자신의 게놈 속에 저장해 둡니다. 영광의 상처처럼 바이러스의 침입을 겪을 때마다, 침입했던 다양한 바이러스의 정보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자손에게 전달됩니다. 그리고 같은 바이러스가 침입해 오면, 가지고 있던 정보와 비교했을 때 딱 걸리는 바이러스의 경우 Cas9이라는 가위를 꺼내 들고 가차 없이 잘라버리는 전투력을 쌓았습니다. Cas9이 박테리아 자신의 게놈 속에 보관한 바이러스 정보를 전투에 사용하기 위해서는, 바이러스 서열 앞뒤로 Cas9이 인지할 수 있는 특정 서열이 첨가되는데요, 이로 인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특정 서열들 사이사이에 다양한 서열(다른 바이러스의 서열)이 끼어 있는 독특한 패턴을 관찰한 것이 크리스퍼 발견의 시작이었습니다. 이러한 독특한 패턴 속에는 어떤 생물학적 이유가 틀림없이 있을 것으로 추측하고 연구하던 중, 다양한 서열들이 바이러스 서열의 일부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이 발견이 박테리아의 면역 시스템일 것이라는 깨달음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플레밍과 푸른곰팡이 이야기처럼, 흘려버릴 수도 있는 관찰에서 숨어있는 의미를 찾는 것이 과학을 하는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 주는 예라고 하겠습니다.

크리스퍼가 박테리아가 바이러스를 대항할 때 사용하던 면역 시스템이라고 하니, 우리의 면역체계와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겠습니다. 사람을 비롯한 고등 동물들의 면역은 항체를 대표로 하는 단백질 무기를 활용하는데요. 항체가 인지하는 목표물 역시 대부분은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의 단백질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이 바이러스 표면의 스파이크 단백질을 타깃으로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 보셨지요? 재미있게도 박테리아는 나노 기계인 단백질이 아닌 정보 시스템인 유전자 자체를 인지하고 공격하는 면역 시스템을 쓰고 있었네요. 여기에는 DNA나 RNA 같은 유전 정보들은 상보적인 서열(컴퓨터라면 000110과 111001에 해당합니다)을 만났을 때, 서로 인지하고 붙는 자연의 성질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크리스퍼 원래 역할은 바이러스의 DNA에서 특정한 자리를 인지하고 자르는 것이었는데, 이를 바이러스 대신 사람의 게놈에 적용하면 원하는 유전자를 찾아서 잘라버릴 수도 있는 기술이 됩니다. 다시 말해 유전자 가위로서의 가능성을 찾아낸 것이지요. 자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는 잘라내고, 원하는 정보를 집어넣는 편집 기능으로까지 확장 가능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바꾸고 싶은 유전자 위치의 DNA 서열만 알고 있으면, 30억 염기쌍 어디에 있는 유전자도 찾아내서 자르거나, 새로운 유전자를 도입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2019년에는 이미 크리스퍼를 이용해 유전자 편집을 통해 에이즈에 저항성을 가진 아기가 중국에서 태어났고, 해당 과학자는 윤리적인 문제로 감옥에 갔습니다. 인류에게 주어진 크리스퍼라는 엄청난 신기술이 재앙이 아니라 축복이 되기 위해서는 과학자들의 책임 있는 노력이 절실하게 필요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글. 화학과 장영태 교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