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테키안

2021 겨울호 / POSTECH ESSAY

2022-01-19 255

포스텍 교수님 이야기

기계와 에너지, 그리고 열유체 이야기

 

마지막으로 포스테키안에 글을 썼던 것이 스스로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무려 13년 전 대학원생이었을 때라고 하니 새삼 시간의 흐름이 빠르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런 시간의 흐름 속에서 명확한 정체성으로 발전하는 콘텐츠를 만들어가는 알리미들과 이를 즐기며 어려운 시간을 함께 쌓아 나아가고 있을 예비 포스테키안들을 보며, 어설픈 학생 알리미가 모교의 교수로 돌아올 정도로 많은 것이 변하였지만 그 속에서 변하지 않는 어떤 본질적인 것이 이어지는 것 같아 기쁘면서 묘한 감상이 들기도 하였다. 이처럼 시간이 흐르고 사회의 모습이 변하지만, 그 속에서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는 것들 혹은 그 필요성이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이 표현은 나의 전공을 소개하는 데 가장 적합한 표현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나의 전공은 기계공학으로, 그 안에서 열과 유체의 전달에 관해 연구하여 에너지 시스템을 만드는 일을 한다. 하지만 이 정석적인 소개도 청자에 따라 다른 식으로 표현되곤 한다. 이제 막 아버지가 대체 뭐 하는 사람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한 6살짜리 아들에게는 전기를 만드는 사람이라고도 하고, 발전 시스템에 대한 관심이나 흥미가 없으신 지인분들에게는 물을 잘 끓이는 방법을 연구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작업 중에 노트북 발열 때문에 더워져 불만을 표현하는 친구에게는 노트북이나 전자 제품을 더 얇게 만들 수 있게 효과적인 방열에 대해 연구한다고 하고, 뇌졸중을 연구하시는 의사분들께는 뇌혈관 유동을 모사해서 가시화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한여름의 푹푹 찌는 날씨 속 에어컨을 켜면서는 개인적으로 가장 위대한 공학자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는 에어컨 개발자 캐리어(Carrier)와 같은 연구를 하는 사람이라고 하며, 그 먼 옛날 메르세데스 벤츠(Mercedes Benz)가 자동차 내연 기관을 만들었듯 전기 자동차의 효과적인 에너지 생성, 저장, 활용을 연구하는 사람이라고도 소개한다. 즉, 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뜨거움과 차가움, 그리고 공기, 물을 포함한 다양한 유체가 이동하고 있는 열유체 현상을 활용한 온갖 시스템을 연구하는 사람이다.

모든 공학 분야가 그렇듯 기계공학 안에도 다양한 분야가 존재하는데, 그중 내가 연구하는 열유체 분야는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지지는 않은 분야이다. 솔직히 본인은 기계공학과에 진학하고도 수업을 듣기 시작한 이후에나 알았으니 그만큼 아주 잘 알려진 분야는 아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받는 질문이 열유체가 기계공학이랑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인가다.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대체 기계공학에서 이야기하는 ‘기계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한 견해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기계공학에서의 기계란 인간이 인간의 원시적인 힘, 즉 걷고 물건을 들고 눈앞에 있는 사람을 보고 말하고 듣는 기본적인 것에서 더 나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자동차가 만들어지기 전에 본인이나 말과 같은 다른 동물이 갈 수 있는 곳까지밖에 갈 수 없었고 에어컨과 히터가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인류가 생활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제한되었으며, 냉장고 없이는 식품의 보관 및 활용 없이 그 자리에서 모두 먹고 필요할 때마다 채집이나 사냥해야 했을 것이다. 또한 노트북 없이는 여러분에게 글을 전달하기 위해 손으로 하나씩 작성해야 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인간이 자연 생물이 아닌 ‘어떠한 하드웨어 시스템’을 만들어 냄으로써 가능하게 된 것인데, 우리는 이것을 ‘기계’라고 부른다. 즉, 인간이 원시 생활로 돌아가지 않는 한 사용하는 것들이 기계이고 이에 관한 연구가 기계공학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기계’는 자연 생물이 아닌 어떤 목적을 이루는 하드웨어로, 이를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에너지 공급 기관이 필요한데, 그 시작점이 열유체를 활용한 제임스 와트의 증기 기관이다.

증기 기관의 기본 원리는 간단히 생각하면 밥솥과 같은데, 뜨겁게 끓여진 물이 증기 상태로 변하면서 부피가 증가하여 추를 밀어내는 힘이 생겨 피스톤을 밀어내고, 이후 증기를 찬물로 냉각시켜 팽창한 부피를 수축시킴으로써 밀어낸 피스톤을 다시 당겨낸다. 이 과정을 반복하게 되면 뜨겁게 달궈진 증기 상태의 유체를 전달하고 다시 차갑게 열을 식히는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피스톤을 밀고 당기거나 원형의 발전기를 회전시켜 전기를 생산할 수 있게 된다. 이때 생성물의 종류는 증기를 어떻게 달구냐에 따라 석탄, 천연가스, 원자력, 지열 발전소 등으로 구분되나, 기본적으로 결국 열을 전달하고 유체를 이동하는 과정이 핵심이다. 흔히 사람들은 인간이 전기를 쓴 지 그래도 100년에 가까운 시간이 되어가기에 발전소를 설계하는 것에 관해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 없을 것이라고도 상상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열 방정식과 아직도 명확한 해를 찾기 어려운 ‘나비에-스토크스 유체 방정식’을 같이 풀어야 하는 열유체는 아직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은 분야 중의 하나이다. 기존의 발전소나 시스템은 정해진 조건에서 수행한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에, 새롭거나 보다 나은 에너지 시스템이 필요한 경우에는 작용 원리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필요한 상황이다. 그 어느 때보다 기후 변화와 같은 에너지 이슈가 가속화되는 요즘, 현재의 에너지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에 따라 더 복잡한 문제를 풀기 위한 이론, 시뮬레이션 노력과 실험적 노력이 함께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필요한 열 및 유체 전달에 대한 이해는 에너지 생성 현장 외에도 반도체 공장의 시스템 설비 설계에 활용되고, 가전 기기의 성능 개선 및 활용에 적용되고, mRNA 백신 제작을 위한 미세 유체 설비 설계에도 적용되며, 인간 몸속 혈류 분석 등에도 활용되고 있다.

최근에 1학년 학생들에게 들었던 질문 중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이 있었다. 바로 전기 자동차 등으로 기계공학과는 전망이 어두운 것 아니냐는 질문이었다. 사실 평생 기계공학과 전망이 어둡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느껴본 적도 없고, 기계공학 교수님들뿐만 아니라 타 학과 교수님들도 그런 전망을 느껴보지 못하였지만, 학생들 시선에서는 기계공학이 미디어에서 집중하는 분야가 아니다 보니 직관적으로 그렇게 오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많이 하는 오해 중의 하나가 ‘난 물리보단 화학 쪽이 좋은데 기계공학과는 안 맞지 않나’ 도 있는데 참고로 본인도 고등학교 교육과정 기준으로는 물리보단 화학을 좋아했고 열과 화학은 상당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요즘 미디어에 많이 노출되는 회사들과 기계공학이 연관되지 않을 것이라고 학생들은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 미국 등에서 100년 역사를 가진 자동차 엔진 연구실은 전기 자동차 전체 제어 및 시스템에 관한 연구를 선도하고 있다. 자동차, 즉 작은 에너지원을 활용하여 빠른 속도로 멀리 가야 하는 하드웨어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외국 학회에서 만났던 나와 같은 연구 분야의 미국 친구는 첫 직장을 구글로 선택하였었다. 그는 구글 데이터 센터의 열 및 에너지의 효율적 활용에 대해 고민하고 설계한다. 데이터 센터 하나의 전기 소모량이 중소 도시와 맞먹으니 효과적인 냉각이 필요한 하드웨어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최근에 떠오른 키워드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어 보이지만, 하드웨어로 구현되어야 한다는 근본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기계공학이 해야 할 일은 정말 다양하다고 볼 수 있다. 하드웨어 시스템, 즉 기계는 인공지능 등의 도구를 이용해서 계속 발전될 것이다. 최근의 급격한 소프트웨어 소비 증가에 따른 에너지의 소비에 대응할 수 있는 진보된 에너지 기술에 관한 연구가 지속될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시대의 요구가 변하더라도 이를 말 그대로 실생활에 구현하는 분야의 매력은 우리 주위를 감싸고 있는 공기 유체만큼 끊임이 없는 것 같다.
일상과 가까이 있어 친근하지만, 과학/공학적으로는 우리가 너무 모르는 현상들. 향후 존재하는 것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과 연구를 통해 새로운 에너지 시스템을 설계하며 더욱 나은 미래를 구현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1월 21일, 에세이와는 다른 매력의 조항진 교수님을 만나보세요!

글. 포스텍 기계공학과 조항진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