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테키안

2021 겨울호 / HELLO NOBEL

2022-01-19 153

복잡한 현상에 숨겨진 패턴을 찾아내는
복잡계

 

2021년 노벨 물리학상은 복잡계 연구에 기여한 학자에게 수여되었다.
노벨상을 수여하는 스웨덴 과학한림원은 이번 수상의 의의를 1) 무질서한 물질이 무작위로 하는 운동을 설명하는 이론을 만들고, 2) 지구 기후를 이해하고 인류가 기후에 미치는 영향을 밝혀낸 것이라고 하였다.
특히 기후 변화가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도 명확히 하였다.

노벨상은 빼어난 과학 업적을 남긴 학자에게 수여된다. 학자의 삶이 사회와 분리되어 있고, 학문도 세상과 거리를 두고 있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입자를 다루고, 상상하기 어려운 우주 공간을 넘나들고,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우주 탄생의 순간을 이야기하는 물리학에서 일상을 떠올리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분야인 ‘복잡계’는 그간 대중들이 많이 접해보지 못하였을 분야다. 그렇지 않아도 일반인들이 이해하기에 거리감이 있는 물리학 중에서도, 반도체, 레이저, 로켓, 인공위성 같은 첨단 기술과도 연결이 잘 안되는 ‘복잡계’라니. 하지만 복잡계는 일상과 가장 가까운 물리 분야로, 세상 모든 것이 복잡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복잡계는 아주 많은 것들이 서로 얽히고설킨 시스템이다. 때문에 겉보기에는 무질서해 보이지만, 그 시스템에 숨겨진 패턴과 질서를 찾기 위해서 많은 학자가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복잡계의 하나인 무질서한 지구 시스템에 나타나는 기후 변화의 모델을 밝혀낸 것이 이번 노벨상의 주요 업적이다. 노벨상을 수여할 때는 항상 각 학자가 몇 %의 지분을 가졌는지 밝힌다. 이번 노벨상은 복잡계 이론의 파리시 교수가 50%, 기후 변화 모형의 마나베 교수와 하셀만 교수가 나머지 50%의 공헌을 차지하였다.

복잡계는 통계물리라는 물리학 분야에서 시작되었다. 통계물리는 ‘미시적인 상태’와 ‘거시적인 상태’를 연결하는 접점이다. 많으면 달라진다는 생각으로 자연을 바라보면 통계물리의 세계가 보인다. 시스템을 구성하는 하나 하나를 따로 보는 것과 시스템 전체를 보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가령 물이 얼음으로 바뀌는 상전이(Phase Transition)를 보자. 어는점에 도달하면 갑작스레 모든 물 분자가 얼음으로 바뀌는 거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럼 그릇에 담긴 물 분자 중 얼마나 많은 분자가 얼음으로 바뀌어야 그릇 속 H2O가 액체에서 고체로 바뀌는 것일까? 그릇 속 물과 얼음 분자의 비율은 어떤 함수를 따라 변하는 걸까?

통계물리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볼츠만 이전에는, 열(Heat)을 다루는 열역학은 단지 현상론적 해석과 열역학 법칙에 기반을 둔 연역적 접근에 의존하였다. 볼츠만은 ‘에너지가 같은 미시적 상태는 모두 같은 확률로 존재한다’라는 가설과 엔트로피의 정의를 내어놓았다. 이후 우리는 그간 거시적 관찰로만 바라보던 실험 결과를 해석하고, 열역학 법칙의 결과 역시 잘 유도할 수 있게 되었다. 시스템의 미시적 영역과 거시적 영역을 연결하는 비밀을 풀어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통계물리와 복잡계는 특정한 대상이나 문제를 풀기보다는 온갖 시스템에 적용이 가능한 틀을 만든다. 그래서 법칙보다는 세상을 바라보는 패러다임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노벨상을 받은 파리시 교수도 특정 문제를 푼 업적보다는 다양한 ‘무질서한 시스템’을 설명할 방안을 제안한 것이 주요 업적이다. 만약 한 공간에 여러 사람이 모여 있고, 각자 빨간 옷과 파란 옷을 골라 입을 수 있다고 하자. 그리고 각 사람은 남들이 입고 있는 옷은 입기 싫어한다고 가정해 보자. 두 명이 모이면 간단하게 각자의 옷 색깔을 고를 것이다. 하지만 세 명이 모이면 같은 색깔 옷을 입은 사람이 생길 수밖에 없어 서로 어쩔 줄 몰라 하는 ‘쩔쩔맴(Frustration) 현상’이 생긴다. 파리시 교수는 전자의 스핀 사이에서 나타나는 ‘쩔쩔맴 현상’1을 연구하였다. 이뿐 아니라 뜨거운 액체 유리를 차가운 물에 넣어서 갑자기 온도를 낮추면 무질서한 유리 분자의 복잡계가 생긴다. 파리시 교수는 유리 분자가 두 가지의 상태로 존재하면서 상호작용하는 모형을 탐구하였다. 이런 모형은 물이 얼거나 시스템이 무질서한 상태로 변하는 상전이 현상을 이해하게 해 주었다.

옆의 사진은 쩔쩔맴 현상의 또 다른 예이다. 붉은 동그라미로 표시된 각 철 분자를 작은 자석처럼 생각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쩔쩔맴 현상으로 인해 각 스핀의 방향을 정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다.

파리시 교수의 이론은 더욱 다양한 시스템에 적용할 수 있다. 좁은 방이라면 세 명만 모이겠지만 넓은 교실에는 더욱더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다. 만약 100명의 사람이 모인다면 10명이 만났을 때 생기는 것보다 쩔쩔맴의 강도가 세진다. 이때 커지는 쩔쩔맴은 사람 수의 증가에 해당하는 열 배가 아니라 더욱 큰, 기하급수적인 변화를 겪는다. 이는 소셜 네트워크에서 일어나는 의견 대립, 신경망에서의 신호 전달, 고려할 사항이 많은 기상 현상과 기후 모델, 복잡한 학습이 일어나는 인공지능 등 여러 형태의 시스템에 적용된다.

또 다른 수상자인 마나베 교수와 하셀만 교수는 특히 기후 변화와 관련된 모델 연구에 크게 기여하였다. 과거의 기후 변화는 관측 데이터를 분석하기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앞으로 기후가 어떻게 바뀔지를 예측하는 것은 아주 복잡한 문제이다. 마나베 교수는 기후 변화를 예측하는 수치 모델을 처음으로 만들었다. 그는 지구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 변화가 지구 표면 온도 상승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살펴보았다. 하셀만 교수는 기후 변화를 추정할 때 대기만큼 해양 온도가 중요하다는 점을 고려하였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상당 부분을 해양이 흡수하기 때문이다. 또한 기후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신호를 식별하는 방법도 개발하였다. 이 모델 덕분에 인간의 이산화탄소 배출이 대기 온도 변화에 영향을 미친다는 걸 증명하였다.

복잡계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특정 분야나 문제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래서 여느 해와 달리 2021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들은 어떤 일을 하였기에 노벨상을 받았는지 명확하게 와닿지 않는다. 이는 역설적으로 복잡계가 일부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광범위한 확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최근의 복잡계 연구는 전자의 스핀이나 기후 모형, 생물학, 기계 학습뿐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 의견이 확산하고 대립하는 과정 등에도 활용된다. 물질이나 생물 데이터뿐 아니라 사회에서 수집된 빅데이터 분석에도 복잡계의 접근 방법이 많이 쓰인다.

이렇게, 세상을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한 복잡계의 문이 활짝 열렸다. 여느 노벨상 수상자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세상으로 안내해 준 학자들에게 노벨상이 주어졌다. 이제 그들의 연구를 발판으로 삼아 어디로 어떻게 나아갈지는 우리의 몫이다.

 

글. 산업경영공학과/물리학과 정우성 교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