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테키안

2021 겨울호 / 크리에이티브 포스테키안

2022-01-19 48

4년간의 대학 탐험기

졸업을 앞둔 학부생이 전하는 대학 생활 이야기

 

안녕하세요, 여러분. 22년 2월 졸업을 앞둔 만큼, 입학을 꿈꾸는 여러분께 이야기를 전달하게 되어 감회가 새롭습니다. 4년의 학부 생활을 돌아보며 차분히 생각해 보니, 제가 좋아하는 문구가 떠오르더군요. 바로 ‘소설 쓰는 철학자’로 알려진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의 것입니다.

 

“시간은 나를 이루고 있는 본질이다.
시간은 강물이어서 나를 휩쓸어 가지만, 내가 곧 강이다.”

혹시 위 문구의 의미가 잘 느껴지시나요? 저는 두 가지 정도의 의미로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첫 번째 해석은 ‘시간’과 ‘나’의 관계에 대한 것입니다. 시간은 나로 하여금 단맛과 쓴맛 모두를 맛보게 합니다. 또, 시간은 언제는 빠르게, 또 언제는 매우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시간의 흐름이란 이렇게 불가피하고 강력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시간을 주체적으로 가꾸어 나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위 구절은 시간 관리의 중요성을 역설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시간 관리야말로, ‘나’에 대한
관리인 것이죠.
한편, 또 다른 해석은 ‘나’ 자체에 대한 것입니다. 위 문구를 말한 보르헤스가 인간이 갖는 ‘언어’와 ‘시간’에 대한 문제를 풀고자 노력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숨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현재’에서 ‘과거’와 ‘미래’를 모두 떠올릴 수 있는 것일까요? 어쩌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과거-현재-미래의 시간관에는 인간 의식의 본질적인 특성이 숨겨져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위 구절은 언어적 세계관이 인간 의식에 미치는 영향을 표현한 것 같습니다. 고교 시절부터 인간의 의식에 관심이 많았던 저는, 지난 4년간 포항공과대학교에서 수학, 물리학, 생명과학, 컴퓨터공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접하며 생각의 폭을 넓히며 성장해 왔습니다. 이 글에서는 한 명의 수학도이자, 의식과 마음에 대한 철학도, 과학도로서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소개하고자 합니다.

 

고교 시절, 꿈을 갖게 되다

저는 고교 시절 생명과학, 그중에서도 인간의 심리와 신경 시스템에 관심이 많던 학생이었습니다. 당시 실험 시간에 양 뇌를 해부했는데, 그날 이후로 다음과 같은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1. 인간의 의식과 마음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2. 그것의 본성은 무엇이며, 어떻게 기능하는가?
3. 어떻게 물질적인 뇌에서 인간의 마음이 발생할 수 있는가?

당시 위 질문에 답하기 위해, 혼자서 일반생명과학 교과서를 찾아보거나 심리학 서적을 읽어보기도 했고, 한국 뇌과학올림피아드에 참여해 여러 교수님께 특강을 듣기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질문에 대한 뚜렷한 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고등학교에서 물리학을 배우며 이 학문을 통해 위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만약 모든 것이 물리적 실체나 물리적 현상으로 간주할 수 있다면, 인간의 의식도 그러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의식과 그것의 본성을 탐구하겠다는 저의 꿈은 포항공과대학교로의 진학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대학 입학 후, 꿈을 구체화하다

포항공과대학교에 입학한 직후, 무은재학부에 소속되어 3학기 후 학과를 결정하는 제도 덕분에 좋은 기회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특히 ‘새내기 연구참여’라는 연구 수업을 장려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생명과학과의 생물정보학 실험실에서 실제 연구를 체험해 볼 수 있었습니다. 당시 생물물리학을 전공하신 교수님을 찾다, 생명과학과의 김상욱 교수님을 뵙게 되어 새내기 연구참여를 요청했고, 교수님께서 흔쾌히 수락해 주신 덕에, 한 학기 동안 관심 분야의 내용을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해당 분야에서 인간의 의식과 관련된 연구는 쉽게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포항공과대학교에서 주최한 생명물리 여름학교에 참여해 물리학과의 김승환 교수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한국계산뇌과학회의 초대 회장이자, 인간의 뇌에 관심이 많으신 교수님과 면담을 진행하며 많은 조언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물리학과 전재형 교수님의 통계물리학 연구실에서 연구 참여를 진행하였고, 이 연구를 통해 브라운 운동을 비롯한 수학적 방법론에 큰 흥미를 얻게 되었습니다. 한편, 연구참여를 하는 동안 ‘머신러닝’이라는 응용 수학 분야를 접하게 되었는데, 그중 ‘인공지능’이라는 키워드가 눈에 띄었습니다. 이에, 인공지능에 대한 심도 있는 학습을 위해 여러 교과서 원서를 독학하거나, 세미나 그룹을 운영해 관련 지식을 습득하였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한 인공지능 세미나

 

전공 결정 후, 꿈에 도전하다

수학과에 진학하기로 한 것은, 수학으로 쓰인 텍스트를 집중적으로 읽으며 논리적 사고 능력을 크게 기르기 위함이었습니다. 실제로, 수학을 통해 길러진 논리적 사고 능력은 새로운 지식을 빠르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교내 인공지능대학원에서 인공지능 관련 국책 과제의 연구 인턴을 수행하며, 인공지능 관련 내용을 폭발적으로 학습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앞서 제가 가졌던 질문의 근원이 인공지능의 역사를 구성하는 철학적 기반과 관련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철학 논문을 읽고 공부하는 데에 있어 수학에서의 훈련이 큰 역할을 하여 깊이 있게 공부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인공지능과 심리철학에 관한 공부 후, 저의 질문이 아직 심리철학의 범주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로 우리의 의식을 계산 과정으로 간주하는 계산주의 마음 이론(Computational Theory of Mind)이 그것입니다. 계산주의 마음 이론 중 고전적 계산주의(Classical Computationalism)와 결합주의(Connectionism)는 프로그래밍 언어와 현대의 인공지능의 토대가 될 만큼 아주 중요한 이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두 이론의 장점이 적절히 이루어진 완전한 이론은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또, 각 개체의 주관적 경험의 핵심인 감각질(Qualia)에 대한 계산 이론이 등장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인류가 발견하지 못한 지식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저는 수학의 도구 중 하나인 위상수학을 활용하여, 인간의 두뇌와 계산 과정이 갖는 구조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간단한 심층 신경망(Deep Neural Network)의 위상수학적인 구조를 밝히는 데에 힘쓰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마음의 이론을 과학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한국의식과학회(KACS)에 참여하여, 의학, 바이오 및 뇌공학과 등 다양한 배경을 지닌 분들과 함께 매주 심리철학 이론에 관해 토론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의 궁극적인 꿈이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는 점이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수백 년간 풀리지 않은 문제가 그리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인간의 의식에 대해 공부한 제 경험을 돌아보고 공유하는 시간이 정말 즐겁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공부한 내용을 대중 강연으로 제작하여 교내 프로그램인 “포스텍 x 크리에이터(POSTECH x CREATOR)”에 공유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인공지능의 수학>에 대한 강의를, 올해는 <인공지능의 철학적 논의>에 대한 강의를 제작하였습니다.

(위)의식과학학술회 회원분들과 함께 한 심리철학 세미나
(아래)직접 기획한 대중 강좌인 “인공지능의 수학” 페이지

 

마치며

4년간의 학부 시절 동안 이룬 성장을 돌아보며 저는 ‘사람’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인간의 의식에 대해 탐구하는 동안 큰 조언을 주신 여러 교수님. 인공지능에 대해 세미나를 기획했을 때 같이 한 팀원들. 심리철학 세미나에서 만난 학술회 회원님들. 여러 공모전과 경진대회에 함께 도전한 친구들. 모든 곳에 사람이 있었고, 그들을 통해 비로소 저를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어찌 보면, 제가 인간의 의식에 관해 탐구하는 것이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네요:) 또, 만약 여러분이 우리 사회에 정말로 중요한 기여를 하고 싶다면, 인간과 인간 사회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일 것입니다. 문학, 경제학, 경영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두고 우리 사회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면, 세상을 바라보는 해상도가 크게 높아질 것이라 확신합니다.
4년이라는 시간은 참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입니다. 지난 4년은 저의 꿈을 구체화하고 더 가까이 다가가는 초석을 마련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보르헤스의 구절처럼, 여러분도 주어진 시간을 잘 관리하며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시너지를 내며, 자기 잠재력을 폭발시킬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글. 수학과 18학번 이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