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테키안
2019 여름호 / Hello Nobel
Hello Nobel / 2018년 노벨 생리의학상 항암면역치료
새삼 얘기하지 않아도 인류 건강에 가장 위협적인 질병은 암(癌, Cancer)입니다. 최근 통계에 의하면 인간 수명의 증가로 미래에는 2명 중 한 명은 암으로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질병의 생물학적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는 길은 멀고도 험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생명을 구하는 일은 그 원리를 이해하는 것보다 우선합니다. 암을 생물학적으로 잘 알지 못했던 시절에 인류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수술을 통한 암의 제거였습니다. 고전적인 거시적 생물학에서 세포의 작동원리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발전한 생명과학은 세포 수준에서 암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하나씩 실마리를 찾아왔습니다. 가장 단순한 의미로 암세포란 조절되지 않는 성장이고 이는 분열하는 암세포를 죽일 방법을 암 치료의 대안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눈부신 근대 과학의 발전은 방사선과 화학 치료제 발견을 통해 세포를 사멸시키는 방법을 암 치료에 도입했고, 소위 암의 표준 치료법으로 자리매김한 수술, 방사선, 화학 치료법은 수많은 암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는 데 일조했습니다. 그런데도 이러한 치료법들의 근본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일단 종양이 눈에 보이지 않을 때 수술과 방사선 요법을 적용하는 어려움이 있고, 분열하는 암세포를 화학 치료제로 제거하는 것도 효율이 낮고 만만찮은 부작용을 불러옵니다. 이보다 더 근본적인 암 치료법은 없을까요? 지난 반세기 동안 면역학 연구자들은 이에 대한 해답을 우리 몸이 가진 근본적인 방어력, 즉 면역력(Immunity)으로부터 찾아왔습니다.
우리 몸의 면역세포 중 암을 찾아서 제거할 수 있는 세포들이 있습니다. 그중 세포 안의 이상 신호를 가장 정확히 인지해서 암세포를 죽일 수 있는 세포가 바로 살상 T 세포(Cytotoxic T cell)입니다. 살상 T 세포는 바이러스와 같은 외부 인자가 세포에 침투했을 때 바이러스의 특이 신호를 인식해서 감염 세포를 죽이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 작용 원리를 가장 간단히 설명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 몸의 모든 세포는 세포 안에서 생성되는 단백질들의 일부를(학문적으로 에피토프(epitope)라고 부르는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들의 특정 서열) MHC라고 하는 단백질 윗부분에 올려 세포 표면으로 제시합니다. 마치 MHC라는 쟁반에 사과가 조각으로 잘려서 올려져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사과가 단백질이고 사과 조각이 에피토프) 살상 T 세포는 MHC/에피토프를 동시에 인지하고 반응합니다. 대부분의 에피토프는 세포 자신의 단백질들이 대사 과정에서 분해되어 제공됩니다. 따라서 이 경우 살상 T 세포는 세포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고 반응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포에 바이러스가 감염돼서 바이러스 단백질 일부가 에피토프로 제시되면 살상 T 세포는 격렬하게 반응해서 감염된 세포를 죽입니다. 이를 개념적으로 정리하면, 살상 T 세포는 MHC라는 쟁반에 놓인 에피토프가 자기(Self) 혹은 비자기(Nonself) 유래인가를 인식해서 자기일 때는 무반응, 비자기일 때는 반응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이 바로 제가 강의할 때 항상 얘기하는 면역학의 시작이자 마지막과 같은 ‘자기와 비자기의 면역학적 구분’ 과정입니다. 종양면역학(Immuno-Oncology)의 근본 원리는 살상 T 세포가 암세포를 정상 세포와 구분해서 마치 바이러스처럼 비자기로 인식해서 반응할 수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합니다.
암세포는 필연적으로 유전자에 많은 돌연변이(Mutation)를 갖게 됩니다. 유전자의 돌연변이는 단백질 서열의 변이로 이어지고 따라서 MHC에 제시되는 에피토프도 정상 세포의 것과는 다른 서열입니다. 살상 T 세포는 이러한 에피토프의 미묘한 차이를 인식해서 반응합니다. 이게 정말이라면 암세포가 살상 T 세포의 감시를 절대로 피해 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모든 생명 활동이 그렇게 단순할 리 없습니다. 암세포가 비록 이상한 돌연변이 세포라 할지라도 그 근본은 자기 세포로부터 유래된 것입니다. 즉, 그 세포를 구성하는 단백질 중에 극히 일부가 돌연변이로 인해 변형된 에피토프를 만들어 낸다고 해도 MHC에 올려진 대부분의 에피토프는 정상 단백질들에서 유래한 것들이라는 얘기입니다. 바이러스 감염과 같이 수많은 바이러스 단백질들이 세포 안에서 대량 생산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상황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암세포들 입장에서 살상 T 세포의 무차별적인 공격은 재앙과도 다름없습니다. 따라서 많은 암세포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호하려는 방법을 찾습니다. 바로 살상 T 세포의 활성을 억제할 수 있는 신호를 주는 것이고, 이는 T 세포 표면에 있는 특정 단백질의 스위치를 켜는 것입니다. 소위 면역관문분자(Immune Checkpoint Molecule)라고 불리는(대표적으로 CTLA-4와 PD-1 분자-T) 세포 활성 억제 단백질들입니다. 정리해보면, 암세포가 돌연변이를 통해 변형된 에피토프를 MHC에 제시하면 살상 T 세포가 이를 비자기로 인식해서 암세포를 제거합니다. 하지만 때론 암세포는 살상 T 세포의 면역관문분자 스위치를 켜는 방법을 알게 되고(어쩌면 이런 암세포들만 결과적으로 살아남는 것일지도), 이를 통해 살상 T 세포의 공격으로부터 회피하고 계속 증식하는 과정을 통해 결국 파국으로 치닫게 됩니다.
좌 : 제임스 P. 앨리슨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James_P._Allison_EM1B5525_(46207775441).jpg
우 : 혼조 타스쿠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Tasuku_Honjo_EM1B5529_(46157227432).jpg
2018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앨리슨, 다스쿠 혼조 교수님은 면역관문 분자가 살상 T 세포의 활성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을 기초과학 연구를 통해 발견했습니다. 더 나아가 두 학자는 면역관문분자의 활성을 그에 특이적인 항체를 사용해서 억제했을 때 살상 T 세포의 암세포 살상 능력을 증가시킬 수 있음을 임상시험에서 증명했습니다. 이를 통해 인간이 가진 가장 자연스러운 자기방어 방법인 면역력으로 암세포를 제압할 수 있다는 항암면역치료(Cancer Immunotherapy)의 새로운 길을 열었습니다. 면역치료가 많은 암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앞에 놓인 숙제가 많습니다. 면역관문분자의 작용 기전 및 암 면역학의 추가적인 기초 연구를 통해 항암면역치료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확신으로 만들어 가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다시 (의)생명과학자들이 공헌해야 할 때입니다. 인류는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암의 공포에서 벗어날 것이고, 그 중심에는 인간을 위한 합리적인 과학기술의 진보가 있을 것입니다. 항상 과학은 확신하는 사람들의 끊임없는 도전과 노력을 통해 발전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I am proud of being a Scientist!
글/ 이승우 생명과학과 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