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테키안
2019 봄호 / 복면과학 / 컴퓨터 역사의 서막을 연 에이다 러브레이스
복면과학
최초로 프로그래밍을 한 과학자가 누군지 아시나요? 초기 컴퓨터 과학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긴 에이다 러브에이스가 그 주인공입니다. 에이다 러브에이스는 당시 시대를 앞서가 150년 뒤 컴퓨터를 예견했던 최초의 프로그래머입니다. 과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시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뛰어난 감수성과 글쓰기 능력으로 당대 지식인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던 에이다 러브에이스는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는 마음의 프로그래머이고 딸은 기계의 시인이다”라고 일컬어지기도 하는데요. 과거에는 주목받지 못했지만, 현재 컴퓨터를 사용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주 지대한 영향을 준 에이다 러브레이스가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본격적으로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시인 바이런의 딸로 태어난
에이다 러브레이스의 유년 시절
(조지고든 바이런)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Lord_Byron_in_Albanian_dress.jpg
에이다 러브레이스는 1815년 12월 10일 ‘미치광이 악당이며 위험한 괴짜 시인’ 바이런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바이런은 외모, 스펙, 집안까지 3박자를 두루 갖추고 있었지만, 야성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에이다의 어머니인 애나벨라는 혹시나 바이런의 모습을 딸이 물려받을까 걱정이 들었고 에이다를 위험한 ‘시적인 성향’에서 멀어지도록 교육하였습니다. 이러한 어머니의 교육 덕분에 에이다는 뛰어난 스승님들과 함께 문학 대신 수학, 과학을 깊게 배울 수 있었습니다. 선구적인 여성 과학자 매리 서미빌 Marry Somerville과 기호논리학의 지지자였던 유명한 수학자 오거스터스 드 모르간 Augustus de Morgan 등이 러브레이스를 가르친 스승이었습니다. 저명한 과학자들로부터 과학, 수학을 배운 에이다는 독창적인 수학자로 성장할 가능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에이다의 유년 시절이 좋았던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13세 때는 홍역에 걸려 온몸이 마비가 되어 1년 동안 침대에 누워 지냈고, 회복 이후에도 1년간 목발에 의지하며 겨우 걸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병은 그녀의 호기심과 영리함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병치레 기간에 그녀는 종이에 자신만의 비행기를 설계하고 비행에 관한 모든 것을 담은 『비행학』 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습니다.
영국 수학자
찰스 배비지 (Charles Babbage)와의 만남
(찰스 배비지)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Charles_Babbage_-_1860.jpg
유년 시절을 보내던 에이다가 17세가 되던 해에 그녀와 어머니는 우연히 런던 매릴번에서 찰스 배비지가 주최하는 파티에 참석하게 됩니다. 배비지는 이 시기에 기계적 범용 컴퓨터인 ‘해석기관 Analytical Engine’을 설계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관한 내용을 들은 에이다는 해석기관에 큰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시기에 여성이 대학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당시로써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에이다는 배비지의 집에까지 방문하며 획기적인 해석기관의 설계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배비지는 에이다의 독창적인 사고와 수학적 기능에 깊이 감명을 받아 그녀를 “숫자의 마술사”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역사상 최초
컴퓨터 프로그램 작성
해석 기관에 대해 공부를 하던 에이다는 스승인 드 모르간에게서 배웠던 기호논리학이 해석기관에 적용될 수 있음을 시사했습니다. 그리고 에이다는 주석의 마지막 단원에 베르누이 수 계산을 위해 해석기관에 필요한 명령문을 기록했습니다. 이 명령문은 역사상 처음으로 작성되어 발표된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1843년 후반에 Scientific Memoirs 저널에 실렸습니다. 하지만 에이다가 이해한 해석기관은 이보다 더 놀라웠습니다. 배비지는 주로 수치표를 만들기 위해서 산술 목적으로 해석기관을 사용하는 데 집중했지만, 에이다는 그 목적 이상의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녀는 해석기관이 “숫자 외의 다른 것에도 작용할 수 있다.”라고 주장하면서, 해석기관의 작동 표기법 및 메커니즘의 관점에서도 표현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해석기관이 단순한 수량이 아닌 무엇인가를 대표하는 숫자에 작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에이다는 해석기관이 프로그램 입력 방식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에서 기존 계산기와 본질에서 다르다고 설명하며, 해석기관이 작곡이나 그림과 같은 창작 활동을 포함한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언급하였습니다. 에이다는 해석기관에 대해 이해를 할 때 처음부터 알고리즘 작성에 그치지 않고 컴퓨터의 잠재력을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현재 컴퓨터가 사용되고 있는 다양한 방면을 예측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배비지는 해석기관을 완성하지 못하였고, 에이다의 주석과 초기 프로그램은 긴 시간 동안 거의 잊혔습니다.
사후 주목받은
그녀의 위대한 업적
자신을 ‘시적인 과학자’로 불렀던 에이다는 36세의 젊은 나이에 자궁암으로 세상을 뜹니다. 그로부터 100년 뒤인 1950년대에 이르러서야 에이다의 위대한 업적이 세상에 알려졌고 “세계 최초의 프로그래머”라는 호칭과 함께 1979년에는 그녀의 이름을 딴 ADA 프로그래밍 언어가 등장합니다. 1980년에는 미국 국방부가 ADA를 승인하였고, 해단 군사 규격에 그녀가 태어난 해를 기념하는 숫자(MIL-STD-1815)를 차용하게 됩니다. 또한, 영국 협회는 그녀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1998년부터 컴퓨터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룬 사람에게 그녀의 이름을 딴 러브레이스 메달을 수여하고 있습니다.
알리미 24기 무은재학부 18학번 백진우